아코디언을 든 구순九旬 소년
아무래도 피아노는 한 번쯤 쳐봤어도, 아코디언을 연주해본 사람은 드물겠지. 아코디언을 직접 본 사람도 그리 많진 않을 거야. 아코디언은 오른손으로 건반을, 왼손으로 코드 버튼을 누르며 펼쳤다 접었다 연주를 해야 해. 소리는 거대한 하모니카 같으면서도 작은 오케스트라처럼 웅장해. 겉보기엔 피아노를 축소해놓은 장난감 같아도, 실제로는 제법 무거운 거 있지? 건장한 성인 남자도 한 시간 이상 메고 있으면 어깨가 저려올 정도야.
그런데 내일모레 아흔인데도 이 아코디언을 들고 노방연주를 나가는 사람이 있어. 체격이 건장한 것도 아니다? 멀리서 보면 곧 나이가 아흔이라는 걸 전혀 가늠할 수 없어. 등이 곧고 걸음걸이도 느리지 않거든. 무엇보다 눈웃음 가득하게 환히 웃는 그 표정은 해맑은 십대 소년처럼 보여.
후끄선장의 첫 인터뷰이는 아코디언을 든 아흔살 소년, 장환이야. 아흔살이라니, 얼핏 보기에 그의 나이는 많게 잡아도 70대 후반이었는데 말이지. 90년 인생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한국의 역사 그 자체이자, 한편으로는 소설처럼 비현실적이기까지 해.
인터뷰를 위해 그의 집에 거의 다다르자, 아코디언 소리가 문 너머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거 있지. 내가 몇 시에 올지 정확히 알고라도 있는 듯, 아코디언 소리로 반겨주는 느낌이었어. 점심이 막 지나 식곤증에 올 법한 오후 2시였는데, 그의 집에는 생동감이 가득한 거야. 트로트, 70년대 가요, 찬송가, 왈츠, 재즈.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연주는 내가 도착하고도 한동안 지속되었어. 우리가 방문한 줄도 모르고 연주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지.
인생이 마흔부터라면, 청춘은 예순부터
장환이 아코디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교직을 은퇴하고 나서였어. 3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살면서 늘 합창단을 지휘했고 교회에서는 성가대를 이끌었던 탓에 피아노 건반 연주는 자신이 있었거든. 그런데 피아노는 너무 커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연주하기를 원하는 장환에게 아코디언은 적격이었어.
그것도 이삼십 년도 훌쩍 지났는데… 허허
아코디언 연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언제인지를 묻자 장환은 소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이며 이야기를 풀어갔어. 아코디언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사람들이었어. 장환이 다니는 서울 동산교회에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목요전도 모임이 있었거든. 처음에는 20명 정도였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180명까지 늘어나기도 했지. 매주 목요일 오후 1시 30분, 따뜻한 차 한 잔과 차비 500원을 주는 게 전부였지만 사람들은 모여들었어. 80대가 주류였고 90대도 있었어. 70대는 그 모임에서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지.
장환도 당시 70대였지만 그 어르신들과 더 가까워질 방법을 고민했어. 그때 떠올린 게 음악이었어. 평생 해왔던 거니까. 그런데 합창단 지휘봉을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 그래서 아코디언 학원에 등록해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키워갔어.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을 청춘이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장환의 청춘은 아코디언과 함께 푸르게 돋아난 은퇴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지.
음악은 전세계 공통 언어, 대본 없이도 대화할 수 있어야.
신기한 건, 장환은 악보 없이도 연주를 한다는 거야. 찬송과 복음송은 물론이고, 가요와 동요, 가곡과 명곡까지. 한 번 들으면 그냥 손가락부터 움직이는 거지. 전공자도 아니고 해외 유학을 다녀온 것도 아닌데, 타고난 음감이 있었던 거야.
음악은 세계 공통 언어야!
장환은 음악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면서 이 말을 계속 반복했어. 대본이 있어야만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니듯, 장환에게 음악은 제2의 언어인 거야. 사람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모국어인 거지.
음악을 모국어처럼 여기는 그 애정은 어릴 때부터 그랬대. 동네 어른들 풍악 소리에 솔깃해서 따라다니다가 집에서 못 찾을 정도였다니까. 음악 소리를 따라 사라진 아들을 찾느라 장환의 어머니는 동네방네 구석구석 찾아다니다가 심지어는 변소까지 장대로 휘 저어보면서 아들을 찾았다고 해. 음악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강하면 오죽했으면 장환의 아내 순자가 내게 이런 말까지 했겠어.
저 할아버지는, 나보다도 음악을 더 좋아해
평생 음악과 동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음악은 장환의 교직 생활에서도 함께 성장했거든. 합창단을 지휘하고,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지. 그냥 음악을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전주에서 합창단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중앙초등학교에서는 문교부 음악과 지정 연구까지 맡았어.
덕분에 장환의 활동 반경은 넓어졌어. 요양원, 노인대학, 교회 목요전도는 기본이고, 도봉구청 산하 화음정에서 정기연주회도 열었어. 독실한 기독교인인 장환은 명동과 이태원에서는 외국인들에게 아코디언을 들려주며 전도를 했고, 공원에서 길거리 연주도 했어. 대한노인회 서울지부에서 재능기부자로 인정받고 사례비까지 받기도 했지.
하지만 그에게 음악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섬김이라고 고백하는 것에서 내 마음이 참 뭉클했어. 아가페 소년소녀합창단을 조직하고, 기독음대 통신과정을 밟으며 그는 음악을 통해 기독교의 사랑 정신을 음악이라는 섬김의 형태로 주변에 베푸는 것을 노년의 목표로 삼게 되었거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초심
그렇게 장환이 아코디언을 들고 요양원이나 노인대학에서 봉사 연주할 때면 노인들은 트롯을 좋아했어. 찬송가도 좋지만 트롯에 더 반응했지. 그래서 가끔 트롯을 연주하는데, 교회 권사인 아내가 못마땅해했어. "장로가 세상 노래를 연주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야.
하지만 장환은 생각이 달랐어. 노인들이 복음송보다 트롯을 더 좋아하는 게 사실인데, 그들에게 다가가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지 산으로 갈 수는 없잖여. 물론 물고기 잡겠다고 배에서 물속으로 뛰어들면 빠져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은 해야지."
트롯도 전도의 기회로 쓸 수는 있지만, 그 속에 빠져 복음의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마음속에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거지.
추억이 담긴 옛 동요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30년 전 근무했던 학교 근처에 여전히 살고 있는 장환은, 학교 옆 작은 공원을 연습 장소로 삼고 있어. 그 공원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느 날 5-60대쯤 되어 보이는 초등학교 남자 선생님이 다가온 거야. 장환의 동요 연주를 듣고 감탄하더니 자기 반 5학년 애들한테 한 시간만 수업해달라는 거지.
장환은 기뻤어. 옛날 가르쳤던 학교에서 다시 아이들 앞에 선다는 것이 설레기도 했지. 그래서 수업날에 아이들 앞에서 신나게 동요를 연주했지. 그런데 아이들 반응이 싸늘한 거야. 수많은 동요 중에서 "생일 축하합니다" 한 곡에만 반응을 보였대. 의아한 장환이 선생님에게 요즘 음악시간엔 뭐 하냐고 물었더니, 인터넷에서 케이팝 나오는 거 보며 춤춘단다는 거 있지.
장환은 그때 순간 섬뜩한 기분을 느꼈대. 자기가 눈물 흘리며 불렀던 은혜로운 찬송들이, 옛 동요처럼 복음송에 밀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그래서 요즘 목사인 아들에게 카톡을 보낸대. 찬송가의 유래와 의미를 담아서.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이런 찬양들이 다음세대의 마음 가득히 남기를 바라는 것이지. 새로운 노래들이 나오는 것도 물론 좋은 것이지만, 그 옛날 노래들이 사라지는 것만큼은 막고 싶은 거지.
저승행 노잣돈은 못 줘도 아코디언으로 천상행을 배웅하다
장환이 수많은 연주를 했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는 장례식장에서 했던 아코디언 연주야. 시간이 급해서 아코디언을 등에 맨 채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는데,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 사이에서 별난 차림이 눈에 띄었나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어. 장환은 부끄러워서 신발장 구석에 아코디언을 밀어 넣고 얼른 조문하고 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상주가 손을 꼭 잡더니 영정 앞 의자를 권하는 거야. 그리고 신발장에 숨겨둔 아코디언을 직접 가져와서는 천국 가신 어머니 마지막 길에 찬송 한 곡 부탁하는 거 있지. 평소 고인이 서툰 아코디언 소리를 좋아하셨다면서.
당황했지만 거절할 수 없었어. 자기 어머니를 생각하며 "하늘가는 밝은 길이"를 연주했어. 정성껏 연주하는데 상주가 울기 시작했고, 아들딸과 손주들도 다 소리 내어 울었어. 장환도 덩달아 눈물이 났지. 천국 가신 자기 어머니가 자꾸만 떠오른 거야.
연주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상주가 눈물 닦던 손가락을 하나 세우며 한 곡만 더 부탁했대. 주변 문상객들을 둘러보니, 처음 따갑던 시선과는 전혀 달랐어. 모두 앵콜하는 눈치였지.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연주하자 함께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어.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아코디언으로 배웅해줄 수 있다니. 그건 장환의 인생에서 최고로 의미 있는 연주회 중 하나였어.
아코디언과 함께 늙지 않는 소년
이렇듯 장환은 평생 음악과 함께 살았어. 김제동초, 김제초, 전주금암초, 전주중앙초. 가는 곳마다 합창단을 만들었고, 교회에서는 성가대를 지휘했어. 아가페 소년소녀 합창단 정기연주회도 열었지. 그리고 은퇴 후엔 아코디언이 그 모든 걸 이어갔어.
장환은 지금도 매일 아코디언을 멘다고 해. 무겁지만 기쁘게.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니 가는 시간이 아쉽다고 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부르시는 날까지 기뻐하시는 곳에 잘 사용하고 싶은 거지.
그리고 제자들은 건강하게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장환의 영상을 보고 놀란대.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코디언 건반을 누르는 모습이, 학창시절에 봤던 선생님 모습 그대로라는 거야. 주일학교 시절 찬양대를 지휘하시던 열정, 새벽에 깨워 공부를 지도하시던 그 모습 그대로.
아흔살이어도 소년이 될 수 있는 이유
아흔이 넘어서도 등이 곧고 걸음걸이가 느리지 않은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아. 아코디언을 연주할 때면 장환은 늘 웃거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건반을 누르는 그 모습엔 순수한 기쁨이 담겨 있어. 옛말에 일소일소 일노일노라는 말이 있지.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화내면 한 번 늙는다는 뜻이야. 장환은 매일 아코디언과 함께 웃으며 젊어지는 중인 거지. 활력을 잃지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그 일상이, 그를 소년으로 만드는 거야.
누군가 그러더라고, 음악 멜로디는 사람의 머릿속에 가장 오랫동안, 가장 깊이 기억된다고. 알츠하이머 환자도 어린 시절 노래만큼은 기억한다고 해. 그리고 사람의 몸에서 가장 느리게 늙는 게 목소리라고도 하지. 장환의 아코디언 소리를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돼.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은 늙었을지 몰라도,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그 소리만큼은 여전히 젊거든. 트로트든 찬송가든 왈츠든, 그가 연주하는 모든 멜로디 속에는 소년 같은 설렘이 담겨 있어. 음악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서 늘 우리 곁에 있어.
오래 기억되고, 천천히 늙어가는 음악을 평생 곁에 둔 사람이 젊게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아코디언을 메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 곁으로 걸어가는 일. 그를 아흔 살 소년으로 만드는 비결인지도 모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