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치마를 뜯어 바지로 입은 여자야!
이야기
엄마생각은 나이 들수록 더 많이 나는 법
저 할아버지는, 너무 효자였어. 그것 때문에 내가 고생해서 지금 몸이 이렇게 아픈 거야!
장환의 아내 순자는 시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난리가 나. 지금 자기가 몸이 안 좋은 건 시어머니 때문에 하도 고생을 해서라고. 그럴 때마다 장환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져. 젊을 적 장환은 아내의 편이 되어주기보다는 늘 홀어머니의 편이었거든. 원체 말하기 좋아하는 장환도 시집살이로 고생했던 아내의 과거 한탄이 시작되면 조용해지는 거야.
장환이 가장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시집살이로 고생하는 아내를 보듬어주지 못한 것이라고 해. 그런데 당시의 장환도 나름대로 핑계를 대라면 댈 것들이 많아. 장환은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보고픈 마음에 눈이 초롱초롱해지곤 하거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그가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되기까지, 그 이야기에 대해서 소개해보고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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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 여자가 멀쩡한 치마를 찢어야 했던 이유
지금이야 거리에 나가면 바지 입은 여성을 보는 게 당연하지만, 100년 전 조선 팔도에서 여자가 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어. 남사스럽다고 손가락질받기 딱 좋았지. 그런데 여기, 남들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멀쩡한 치마를 북북 뜯어 바지로 고쳐 입은 여장부가 있어. 바로 지난번 소개한 '아코디언 소년' 장환의 어머니야.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그녀는 스스로 고운 치마를 찢고 거친 바지를 선택했을까? 그 이야기의 시작엔 '작은 거인'이라 불리던 한 남자가 있어.
80kg 쌀가마니와 페니실린 한 방울
장환의 아버지는 키가 작고 왜소했어. 하지만 배짱 하나만큼은 2미터가 넘는 거인이었지. 22살 청년 시절, 그는 무려 80kg짜리 벼 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처녀(장환의 어머니)의 집을 찾아가서 이렇게 외쳤대.
"내 힘이 이 정도요! 따님을 주시오!"
정말 영화 같은 프러포즈지? 그렇게 대범했던 남자는 평생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했어. 하지만 운명은 너무나 얄궂었지. 그 강인했던 가장을 무너뜨린 건 거창한 사고가 아니라, 고작 '치질'이었거든. 엉덩이의 작은 염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데, 그 시절엔 그걸 막을 항생제 한 알이 없었어.
참 통탄할 노릇이지. 아버지가 눈을 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양에서 '사람을 살리는 기적의 곰팡이(페니실린)'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 영국의 처칠 수상도 폐렴에서 살려냈다던 그 약이, 딱 1년만, 아니 몇 달만 일찍 장환의 집에 도착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장 든든했던 기둥은 그렇게 시대의 비극 속에 너무나 허망하게 사라졌어.
"이걸 일이라고 했냐!" vs "장환이를 미워하지 마"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어머니는 유독 장환에게 엄했어. 형과 함께 가마니를 짤 때 솜씨가 서툰 장환을 꼬집으며 혼내곤 했지. 하지만 그날 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어.
"여보, 장환이를 너무 미워하지 마! 나는 그놈이 큰놈보다 더 나을 것 같아."
장환은 자는 척하며 들었던 그 따뜻한 한마디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어.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걸까? 훗날 장환이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누고, 아코디언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어른으로 클 거라는 걸 말이야.
치마를 뜯어 만든 갑옷
아버지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에게는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어. 과부와 고아를 무시하던 그 험한 시절, '호래자식(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 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떠난 직후, 어머니는 장롱에서 치마를 꺼내 거침없이 뜯기 시작했어. 펑퍼짐한 치마로는 아버지 몫까지 일을 해낼 수 없었거든. 동네 사람들은 "치마만 입었지 남자도 못 할 일을 한다"며 혀를 내둘렀지만, 어머니에게 그 '바지'는 험한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갑옷이었던 셈이야.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일하면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어. 무당의 굿 대신 기도로 얻은 귀한 아들, 이름조차 '길이 빛나라(강장환)'라고 지어준 그 아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지.
안개 낀 운동장을 가른 외침 "장환아!!"
장환이 중학생이던 시절, 하루는 밥도 안 먹고 학교에 갔던 날이 있었어. 한창 배고플 나이잖아? 그날 어머니는 도시락 하나를 싸 들고 그 먼 학교까지 찾아오신 거야. 그런데 하필이면 엄숙한 조회 시간이었던 거 있지.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데, 갑자기 그보다 더 큰 목소리가 학교를 뒤흔들었어.
"장환아!!"
수백 명의 까만 교복 입은 학생들 사이에서 아들을 찾지 못한 어머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 거야. 사춘기 소년 장환은 그 순간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대.
“장환이가 누구야!”
듣다 못한 교장선생님이 교단에서 외쳤다고 하지. 창피해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아들이 바로 어머니에게 튀어 나가 화를 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짜증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투박한 도시락을 내밀며 딱 한마디 하셨어.
"배고프지? 어서 먹어라."
그때는 창피했고, 지금은 사무치는
그때 장환은 어머니가 무식해서 창피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구순이 된 지금, 그는 그때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글썽이곤 해. 그건 무식이 아니라 자식 굶길까 봐 체면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었던, '무지하게 큰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지. 아코디언을 켜는 구순 소년 장환의 손끝에는 여전히 그때 그 도시락의 온기가 남아 있는지도 몰라. 치마를 바지로 고쳐 입었던 그 여장부 덕분에, 가난과 편견을 뚫고 오늘의 '선생님 강장환'이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 가득한 효자 장환의 이야기를 알고나니, 장환의 아코디언 연주가 평소보다도 더 소년의 미성처럼 들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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